[IT열쇳말] 스마트 계약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은 프로그래밍된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자동으로 계약을 이행하는 ‘자동화 계약’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계약이 체결되고 이행되기까지 수많은 문서가 필요했다면 스마트 계약은 계약 조건을 컴퓨터 코드로 지정해두고 조건이 맞으면 계약을 이행하는 방식이다. 스마트 계약을 통해 사람들은 부동산, 주식 등 다양한 것을 거래할 수 있고 제3자 없는 당사자간 거래가 가능하다.

90년대 중반 태동한 자동화 아이디어

1994년 암호학자이자 프로그래머인 닉 자보는 스마트 계약이란 개념을 처음 선보였다. 닉 자보는 스마트 계약을 “계약에 필요한 요소를 코드를 통해 스스로 실행되게 하는 전산화된 거래 약속”이라 정의했다. 그는 스마트 계약이 ‘자동판매기’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자판기에 동전을 투입하면 표시된 가격에 따라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분배된다. 동전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자판기에서 물건을 빼갈 수 있다. 자판기는 외부인으로부터 동전과 상품을 지킨다. 이러한 방식을 디지털 사회의 계약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닉 자보는 주장했다.

| 암호학자 닉 자보는 ‘스마트 계약’ 개념을 선보이며 이를 자동판매기에 비유했다. <출처: flickr, Changhwan Han, CC BY>

1996년 닉 자보는 스마트 계약 설계의 기본 원칙으로 관측 가능성(Observability),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 사생활 보호(Privity), 강제 가능성(Enforceability)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스마트 계약은 서로의 계약 이행 가능성을 관찰하거나 성과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관측 가능성), 계약을 이행 또는 위반했을 때 이를 알 수 있어야 한다(검증 가능성). 또한 계약 내용은 계약에 필요한 당사자들에게만 분배돼야 한다(사생활 보호). 마지막으로 계약을 강제로 이행할 수 있는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강제 가능성). 이때 강제 가능성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닉 자보는 강조했다.

그런데 스마트 계약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닉 자보는 디지털 혁명이 인간이 계약하는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개인이 있어야 하고, 서류가 오가고, 직접 사인을 받고 계약 조건의 이행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전통적인 계약 방식이 과연 사이버 시대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 것이다.

일례로 전통적인 계약 형태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한국과 우간다가 연결될 수 있지만, 실제 계약을 체결하려면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소요되는 비용도 적잖다. 닉 자보는 “미래에는 다국적 기업이 분포한 규모가 지역 비즈니스에 도달해 다국적 소규모 비즈니스를 창출할 것이다”라며 스마트 계약이 이러한 지역적 장벽을 극복하고 법적인 비용을 대폭 감축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의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스마트 계약은 여전히 이론에 머물러 있었다.

차세대 스마트 계약 시대가 열리다

스마트 계약은 정보기술이 발달한 최근에 와서야 현실화될 수 있었다. 그 기반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스마트 계약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블록체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2008년 10월31일 ‘사토시 나카모토’는 암호화 기술 커뮤니티 메인(Gmane)에 ‘비트코인: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을 올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구현한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한 ‘모음(Chain)’을 뜻하는 말로, 분산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을 가리킨다. 탈중앙화를 통해 보안성을 높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없이도 P2P(개인간) 거래가 가능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최초의 스마트 계약은 ‘비트코인 스크립트’를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 스마트 거래는 블록체인 기술을 타고 비로소 싹틔울 수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그러나 비트코인은 화폐 결제와 송금 기능에 국한돼 있어 거래 내역과 잔고만 저장할 수 있었고 튜링 불완전성 스크립트 언어를 쓰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2013년 비트코인에 매료된 러시아계 캐나다인 개발자 비탈릭 부테린은 블록체인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가 찾아낸 해결책은 스마트 계약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2015년 비탈릭 부테린은 스마트 계약 특화 블록체인 플랫폼 ‘이더리움’을 선보였다.

| 비탈릭 부테린.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11년 비트코인을 처음 접하고 블록체인 기술에 매료됐다. <출처: 비탈릭 부테린 트위터>

이더리움은 튜링 완전성을 지닌 스크립트 언어 ‘솔리디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개발자가 계약 코드를 작성할 수 있게끔 활용 범위를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한정된 거래만 가능했던 비트코인 스크립트와 달리,이더리움은 개발자의 자유도를 높여 스마트 계약을 발전시켜 다양한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했다. 비탈릭 부테린은 백서에서 이더리움을 ‘차세대 스마트 계약과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이라 소개했는데, 그가 ‘차세대’라 자평한 것처럼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2.0’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비즈니스 효율화 이룰 수 있을까

스마트 계약 활용 사례는 다양하다. 증권업계는 증권 거래에 스마트 계약을 도입해 자동화를 이뤄가고 있다. 나스닥의 경우 전문 투자자용 장외시장 거래에 이를 적용했다. 의료 정보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의료진이 플랫폼에서 원하는 의료 데이터를 검색해 구매를 의뢰하면 보상 정도에 따른 스마트 계약을 통해 데이터 주인이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사물인터넷 기기와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을 연동하려는 시도도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GM과 승차공유기업 리프트는 사물인터넷(IoT) 기반으로 차량을 등록하고 유치권, 이전, 압류 담보관리 등의 추적을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자동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12월18일 <한겨레> 칼럼에는 이런 미래 전망이 실렸다.

스마트 계약의 지시를 받은 자율주행차가 손님을 태우고 다니다가 ‘이더리움’으로 받은 요금으로 수리를 받고 앞으로의 수요를 예측해 무인주차장에 머무르거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남는 수익은 사람이 챙겨 간다.

그러나 아직 스마트 계약은 여물지 않은 기술이다. 스마트 계약은 보통 계약서를 스크립트 형태로 주고 받게 되는데, 스크립트가 잘못되거나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 또 아직까지는 비교적 단순한 계약에 적용이 가능하다. 인간의 개입이 없을 경우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출처=이더리움 프로젝트 홈페이지 갈무리

논문 ‘스마트 컨트랙트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설계 방안 연구’(성신여자대학교 이수현, 김혜리, 홍승필. 한국정보통신학회 하계종합학술발표회, 2017)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개인정보의 수집 목적 달성 또는 정보주체의 요청 시 수집된 개인정보를 파기하여야 하는데 블록체인에 올라간 거래내역은 수정과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이슈가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스마트 계약과 관련한 법제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Federal Reserve Bank of Chicago(2017.6.), 「Blockchain and Financial Market Innovation」
– The loop(2017.3.28.),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개요 -1
– 양유창 기자, 매경 프리미엄(2018.1.2.), 「블록체인이 미래다 (상) 블록체인 누구냐 넌?
– 한수연 기자, 블로터(2018.1.14.), 「[블록체인플랫폼] ①이더리움, 블록체인 2.0 시대를 열다
– 한수연 기자, 블로터(2017.11.28.), 「“블록체인으로 개인이 의료정보 직접 관리하자”
– 이제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2017.7.25.),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동향과 시사점」
– Nick Szabo(1994), 「Smart Contracts
– Nick Szabo(1996), 「Smart Contracts: Building Blocks for Digital Markets」
– Nick Szabo(1997), 「The Idea of Smart Contracts」
– Michael Gord, Bitcoin Magazine(2016.2.), 「Smart Contracts Described by Nick Szabo 20 Years Ago Now Becoming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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